여행신청 | 여권사본 및 계약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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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함 |
항공 및 공항세&유류할증료/숙박/식사/전용차량/입장료/가이드 및 인솔자/여행자 보험/각종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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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포함 | 개인비용 외 없음 |
• 첫 번째 테마 : 자연보단 도시
독일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에 비해 자연 풍경이 아름다운 나라는 아닙니다. 독일 알프스가 있는 남부를 제외하곤 지대가 모두 평평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신 독일은 자연보다 더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언덕 위에는 어김없이 영주의 성이 들어서고, 그 아래의 강과 호수 변에는 마을이 들어섰습니다.
이 도시 속에서 긴 겨울을 나야했던 독일인들이 철학과 문학, 음악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것은 필연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 여행도 이런 도시를 따라 다니며, 독일의 인문학과 예술에 집중하게 됩니다.
• 두 번째 테마 : 세계문화유산이 된 역사 도시들
독일은 지금도 영향력이 크지만 역사적으로도 세계사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온 나라입니다. 큰 것만 훑어봐도 동프랑크가 이 땅에 자리 잡은 후 신성로마제국때는 종교혁명을, 독일제국 때는 1차 세계대전을, 바이마르 공화국 때는 지금 모든 민주국가들의 모델이 된 민주공화정을, 히틀러의 나치 때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이 역사적 공과(功過)는 크베들린부르크, 비텐베르크, 바이마르 등 우리가 여행하게 될 각 도시들에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戰) 후 완벽하게 복원되었거나, 참화를 피한 덕에 중세 모습 그대로인 이 도시들의 가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선정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 세 번째 테마 : 전쟁과 참회의 현장
독일이 저지른 최대의 역사적 과오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 과정의 홀로코스트는 독일 역사는 물론 인류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오점임이 분명합니다.
다행히 독일은 과거사에 대해 철저하고도 지속적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수상이 피해국에 직접 무릎을 꿇고 사과하거나, 공소시효 없는 나치 부역자 처벌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독일은 후손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홀로코스트가 벌어진 강제수용소들을 옛 모습대로 무료 개방하거나, 대도시들에선 공습으로 무너진 처참한 현장을 하나 이상씩 보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여행은 이런 비극적인 장소도 여럿 방문하게 됩니다.
날짜 |
도시 |
교통편 |
시간 |
일 정 내 용 |
제 1일 |
인천 경유지 베를린 |
국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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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출발 경유지 도착 경유지 출발 베를린 도착 후 호텔 투숙 |
호텔 : | ||||
제 2일 |
베를린 |
전용버스 |
전일 |
전일 베를린 시내 탐방 -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 후손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 2,711개의 돌을 공동묘지처럼 세운 홀로코스트 추모비 - 나치에 희생당한 유대인을 기리기 위한 유대인 박물관 - 분단 시절 가장 유명한 국경 검문소였던 체크포인트 찰리 - 냉전의 상징이 예술 공간으로 바뀐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호텔 투숙 |
호텔 : | ||||
제 3일 |
베를린 |
전용버스 |
전일 |
전일 베를린 시내 탐방 - 베를린 여행의 필수코스 페르가몬 박물관 - 베를린 최대의 성당인 베를린 돔 - 세계 최고의 중세 미술품 전시장으로 꼽히는 회화관 - 독일의 현대 건축 향연장인 포츠담 광장 호텔 투숙 |
호텔 : | ||||
제 4일 |
포츠담 비텐베르크 라이프치히 |
전용버스 |
전일 |
포츠담 선언으로 유명한 역사적인 장소 포츠담으로 이동(37km, 1시간 예상) - 프로이센 제국의 거대한 별궁인 상수시 궁전 및 정원 - 2차 대전 후 한국의 독립을 결정한 체칠리엔호프 궁전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된 개신교의 성지 비텐베르크로 이동(90km, 1시간 20분 예상) - 그 유명한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걸렸던 슐로스 교회 - 루터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루터하우스 라이프치히로 이동해 호텔 투숙(97km, 1시간 30분 예상) |
호텔 : | ||||
제 5일 |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
전용버스 |
전일 |
라이프치히 시내 탐방 - 바흐가 27년 간 지휘자로 근무한 성 토마스 교회 - 바흐의 음악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바흐 박물관 - 무명용사를 위한 거대한 돌 성전 라이프치히 전투 기념비 드레스덴으로 이동(111km, 1시간 40분 예상)해 호텔 투숙 |
호텔 : | ||||
제 6일 |
드레스덴 바스타이 드레스덴 |
전용버스 |
전일 |
작센스위스로 이동해 기암괴석 사이의 석조다리가 절경을 이루는 바스타이 국립공원 방문(49km, 50분 예상) 엘베강의 피렌체라 불리는 드레스덴으로 이동해 시내 탐방 - 독일 최고의 바로크 궁전인 츠빙거 - 거장의 대형작품들이 많은 알테 마이스터 회화관 - 명문 오페라 극장인 젬퍼 오페라하우스 - 드레스덴의 상징인 성모교회 - 괴테가 ‘유럽의 발코니’라고 감탄한 브륄의 테라스 - 101m 길이의 거대한 야외 벽화인 군주의 행렬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 감상 후 호텔 투숙 |
호텔 : | ||||
제7일 |
바이마르 아이제나흐 |
전용버스 |
전일 |
세계 최초의 민주 공화국을 만든 독일의 정신적 수도 바이마르로 이동해 시내 탐방(197km, 2시간 10분 예상) - 괴테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실제로 살았던 괴테 박물관 - 로코코 풍의 아름다운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 독일을 잉태한 도시 아이제나흐로 이동(87km, 1시간 예상) - 독일 전역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장소인 바르트 성 호텔 투숙 |
호텔 : | ||||
제8일 |
크베들린 부르크 고슬라르 |
전용버스 |
전일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중세 마을 순례 동프랑크 시절 독일 역사상 최초의 수도였던 1,000년의 고도 크베들린부르크(211km, 2시간 30분 예상)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3세가 가장 사랑했던 도시 고슬라르로 이동해 호텔 투숙 |
호텔 : | ||||
제9일 |
브레멘 함부르크 |
전용버스 |
전일 |
그림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의 도시 브레멘으로 이동해 시내 탐방(106km, 1시간 20분 예상) -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 가득한 마르크트 광장 - 브레멘의 상징인 ‘브레멘 음악대’ 청동상 - 도시의 수호 성자이자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롤란트 동상 - 중세의 거리 그대로인 뵈트허에서 자유 시간 함부르크로 이동해 호텔 투숙(128km, 1시간 30분 예상) |
호텔 : | ||||
제10일 |
뤼벡 함부르크 |
전용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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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동맹의 여왕’ 뤼벡으로 이동해 시내 탐방(68km, 1시간 10분 예상) - 위압감을 주는 뤼벡의 상징 홀슈텐 문 - 성 페트리 교회에서 전망대에 올라 뤼벡 전체 조망 - 뤼벡의 부와 권위의 상징 시청사(외관만 감상) - 세계에서 천장이 가장 높은 고딕 교회 성모 마리아 교회 - 유람선 탑승해 물길을 따라 뤼벡 전경 감상 함부르크로 귀환하여 호텔 투숙(76km, 1시간 30분 예상) |
호텔 : | ||||
제11일 |
함부르크 |
전용버스
국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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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2의 도시이자 가장 큰 항구도시인 함부르크 탐방 - 복합 문화 공간 하펜시티의 엘브필하모니 극장. 튜브라는 이름의 독특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8층의 플라자에 올라 함부르크 항구 전경 감상 함부르크 공항으로 이동하여 출발 경유지 도착 경유지 출발 |
제12일 |
인천 |
국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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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도착 |
※ 상기 일정은 항공스케줄과 현지사정에 의해 다소 변경될 수 있습니다.
제1일 인천-베를린 |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경유지를 거쳐 독일 베를린에 저녁 무렵에 도착하게 됩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일찍 호텔에 들어 장거리 이동에 따른 피로를 풉니다. |
제2일 베를린 |
우리의 베를린 일정은 이틀입니다. 첫날은 주로 역사와 관련된 곳을 집중 탐방합니다. 베를린은 게르만의 오랜 수도였습니다. 독일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프로이센 때부터, 독일제국을 거쳐 현재의 통일 독일에서도 여전히 수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성에 2차 대전과 동서독 분단까지 겪으면서 베를린은 다른 도시와는 다른 시대적, 공간적 특수성을 갖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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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 ![]() 방송에서 독일 특파원들이 뉴스 리포트를 할 때 십중팔구는 브란덴부르크 문을 배경으로 한다. 이 건축물이 독일을 상징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원래 브란덴부르크 문은 1791년에 만들어진, 당시 초강대국 프로이센 제국의 거대한 개선문이었다. 높이 26m, 가로 65.5m의 규모로 고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입구를 모방했다. 하지만 동서독으로 갈라진 시대에는 분단의 상징이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동서의 경계에 선 이 문을 통해서만 특별 허가를 받은 일부 사람들이 동·서 베를린을 왕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산가족을 고통스럽게 했던 이 비극의 문은 마침내 1989년 11월 통일의 상징으로 변모했다. 수십만 명의 인파가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을 가득 메운 가운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여행이 독일 역사의 큰 변혁기를 빠짐없이 함께 한 독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할 것이다. |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Kaiser-Wilhelm-Gedächtnis-Kirche)
프로이센의 빌헬름 2세 황제가 그의 할아버지인 빌헬름 1세를 기리기 위하여 지은 교회이다. 교회의 높이는 113m에 달해서 당시 베를린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고,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로서는 드물게 내부가 화려하게 꾸며졌다.
그러나 세계 2차 대전 중 폭격으로 대부분이 파괴되고 종탑의 일부만 남았다. 건물 외부 벽면에 남아있는 포탄과 총탄 자국은 그날의 참극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이후 원래 교회의 모습으로 복원할 것인가에 대한 오랜 논의 끝에 폐허 그대로 남겨 두기기로 했다. 다시는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독일인들의 반성과 각오가 담겨있는 셈이다.
홀로코스트 추모비(Holocaust Mahnmal)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학살로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원이다. 유대인 출신의 건축가 페터 아이젠만의 설계로 2004년에 완공되었다.
19,000m² 면적의 부지에 2,711개의 검은색 노출콘크리트 석비가 세워져 있다. 크기와 높이가 제각각인 이 비석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순간순간 그 미로에 갇히면서 매우 답답한 순간을 맞게 된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가졌을 막막함과 절망감을 방문객들이 간접적이나마 느껴보게 하기 위해서다.
지하의 전시관엔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이름과 개인기록이 나열되어 있다.
유대인 박물관(Jüdisches Museum Berlin)
2001년 개관한 유대인 박물관은 파격적인 지그재그 형태의 건물이다. 이는 유대인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을 형상화한 것이다.
박물관 안에는 2.5m 높이의 홀로코스트 탑이 있는 데 어두운 공간으로 천장의 작은 틈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온다. 유대인들이 학살당한 가스실을 표현한 것이다. 한 줄기 빛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의 한 가닥 희망을 말하기도 한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공간은 ‘메모리얼 보이드(공백의 기억)’이다. 이 공간의 바닥에는 얼굴 모양의 철판이 깔려있다. 희생된 유대인들의 얼굴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이스라엘 현대미술가인 메나쉐 카디시만의 ‘낙엽’이다. 좁고 어두운 공간, 바닥에 깔린 수천 개의 고통스러운 얼굴들, 밞을 때마다 철판들끼리 내는 소리들, 모든 것들이 관람객들의 마음으로 파고든다.
유대인 박물관은 유대인들의 아픈 역사뿐만 아니라 중세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의 역사와 문화, 현재를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갈라놓은 긴 장벽에는 여러 개의 검문소가 설치되었다. 이 검문소들은 매우 건조하게 A, B, C 등의 알파벳이 이름을 대신했다. 국제통신용어로 A는 Alpha, B는 Bravo, C는 Charlie라고 부르는 것을 적용하여 체크포인트 C를 체크포인트 찰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특히 이 검문소는 고위 인사와 기자, 외교관들이 주로 지나다니면서 냉전시대 스파이 소설이나 영화에 자주 등장, 분단의 한 상징이 되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검문소들도 철거되었다. 그 후 2000년에 복원된 체크포인트 찰리는 분단의 비극과 자유 및 평화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관광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
28년간이나 냉전 시대의 상징으로 인간의 마음까지 엄혹하게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은 한 편이 무너지자 정말 놀라운 속도로 베를린 전역에서 사라졌다.
이에 장벽의 일부를 보존,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런 주장에 힘입어 세계 21개국의 예술가 118명이 남겨진 장벽을 찾아왔고, 각자의 개성으로 ‘평화’, ‘환경’, ‘관용’이라는 주제를 장벽에 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1.3km에 이르는 거대한 장벽은 하나의 커다란 캔버스로 변모했고, 지금은 흉물스러운 장벽이 아닌 아름답고 예술적인 벽으로 재탄생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야외 갤러리이다.
제3일 베를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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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museum)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이자 해마다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아오는 박물관인 페르가몬은 1910년부터 1930년까지 20년에 걸쳐 지은 건물이다.
독일이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때 터키로 파견한 유물발굴단이 가져온 페르가몬 왕국의 유물들이 가장 중요한 전시품이다. 페르가몬 왕국은 기원전 3세기에 소아시아에 세워졌던 고대 왕국이다.
박물관 안에는 발굴 현장에서 고스란히 옮겨온 대규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기원전 2세기에 에우메네스 2세(Eumenes II)의 지시로 지어진 너비 36m, 높이 33m의 페르가몬 신전과 2세기 로마 유적인 밀레투스 시장의 문(Market Gate of Miletus), 대략 기원전 605년에서 562년 사이의 바빌론 성문이었던 이슈타르 문(Ishtar Gate), 8세기 요르단의 유적인 므샤타 궁전 벽면(Mshatta Facade) 등이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 전시물 중 제우스 신전(페르가몬 신전)은 보수 중으로 2024년 이후에 공개 예정입니다.
베를린 대성당(Berliner Dom)
베를린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높이 114m, 폭 73m의 거대한 천장 돔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베를린 돔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원래는 많은 독일 제국의 황제를 배출한 호엔촐레른 가문의 묘지 용도로 1747년부터 지어지기 시작, 1905년에야 지금으로 모습으로 완공됐다.
7,269개의 관으로 이루어진 독일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도 주요 볼거리이며, 돔 정상까지 270개의 계단을 힘겹게 오르면 멋진 베를린 경관이 펼쳐지기도 한다.
국립 회화관(Gemäldegalerie)
유럽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유명 미술관이 있지만 13-18세기 사이의 유럽 회화만 따지면 이곳이 단연 세계 최고다.
렘브란트, 루벤스, 라파엘로, 고야, 보티첼리 등 중세 미술의 거장들이 남긴 걸작 1,400여 점이 어마어마하게 큰 국립 회화관에 상설 전시되어 있다.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
베를린 국회의사당, 브란덴부르크문과도 가까운 광장이다. 명칭은 베를린 근교의 포츠담(Potsdam)이라는 도시에서 유래하였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크게 재개발되어 오늘날 화려한 신도시의 심장부로 부상했고, 베를린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다.
포츠담 광장의 건물들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다. 프랭크 게리, 렌초 피아노, 한스 콜호프, 노만 포스터, 리차드 로저스, 렘 쿨하스 등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의 경연장이나 다름없다.
특히 헬무트 얀이 설계한 소니센터는 독특한 건축양식과 화려함으로 베를린에서 가장 현대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제4일 포츠담-비텐베르크-라이프치히 |
이제 베를린을 떠난 본격적인 역사도시 여행으로 들어갑니다. 오전에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여름 궁전인 상수시 궁전과 포츠담 선언이 발표된 체칠리엔호프 궁전을 답사하고, 오후에는 종교개혁의 발상지인 비텐베르크를 본 다음 라이프치히에서 여장을 풉니다. |
• 포츠담(Potsdam)
상수시 궁전(Sanssouci)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가 지은 여름 궁전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프랑스 문화에 심취하여, 볼테르를 비롯한 프랑스의 계몽주의 문인들과 친교가 많았다.
1747년 베를린 교외 포츠담에 세워진 상수시 궁전은 프랑스어로 ‘근심 없는 궁전’이란 뜻이며, 베르사유를 모방한 것이다. 그러나 실내장식은 당시 유행한 로코코 양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가 프랑스 문인들과 교류하며 연주회를 개최한 것도 이 궁전에서였다.
처음 지어진 궁전은 아담하고 작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다른 궁전과 부속 건물이 들어서게 되어, 자그마치 150여 개의 건물이 자리하게 되었다.
체칠리엔호프 궁전(Schloss Cecilienhof)
호엔촐레른 가문의 마지막 황태자가 가족과 함께 살았던 궁전이다. 체첼리엔호프 궁전은 황태자비인 체칠리에라는 이름에서 따왔다.
하지만 궁전이 건설된 다음해인 1918년에 독일 혁명이 발생하여 황태자 빌헬름은 추방되었고, 황태자비 역시 1945년 소련군이 들어오기 직전 궁전을 버리고 도피했다.
이를 소련군이 접수했고, 1945년 종전 뒤 이곳에서 미국 트루먼, 영국 처칠, 소련 스탈린 등 연합국 지도자들이 모여 패전국인 독일 처리에 대한 포츠담 협정에 조인하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권고하는 포츠담 선언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운명을 결정했던 이 방은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으며, 궁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어 있다.
• 비텐베르크(Wittenberg)
슐로스 교회(Schlosskirche)
비텐베르크는 지금도 인구 5만 명이 채 되지 않는 한적한 마을이다. 그런 곳이 16세기에는 유럽 전역을 뒤흔들어 놓았고, 급기야 세상을 바꾸어 버렸다. 바로 종교 개혁이 이 시골마을에서 시작된 것이다.
세계사적 사건인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이 마을의 무명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가 자신이 봉직하던 슐로스 교회 문에 라틴어로 쓴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비롯됐다.
슐로스 교회는 반박문을 내걸었던 나무문이 루터의 ‘95개조’를 부조로 새겨 넣은 철문으로 바뀌었을 뿐 종교개혁 당시의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있다.
교회 안에는 루터와 루터의 후원자이자 종교개혁을 함께 이끌었던 필리프 멜란히톤의 무덤도 있다.
루터하우스(Lutherhaus)
신교의 나라답게 독일 전역에는 많은 루터하우스가 있다. 그 중 비텐베르크의 루터하우스는 규모면에서도 가장 크고, 루터에 관한 내용도 가장 충실한 곳이다.
루터하우스는 원래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 건물로 루터가 이곳의 수도사로 있을 때부터 머물렀던 곳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이를 지지했던 이 지역의 영주가 루터에게 수도원 전체를 넘겨주었다.
이 후 이 집은 루터와 아내, 그리고 여섯 자녀의 보금자리가 되었고, 동시에 지지자들의 사랑방이 되면서 종교 개혁에도 큰 역할을 했다.
현재 루터하우스에는 그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과 그가 작사 작곡한 찬양집, 그가 사용했던 책상과 의자, 옷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5일 라이프치히-드레스덴 |
많은 음악가들이 활약한 라이프치히는 특히 바흐의 도시입니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죽기 전까지 27년간이나 이곳에 살며 많은 명곡을 남겼습니다.
오전에는 바흐를 중심으로 라이프치히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우아한 도시 드레스덴으로 향합니다.
• 라이프치히(Leipzig)
성 토마스 교회(St. Thomaskirche) 라이프치히에는 곳곳에 바흐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성 토마스 교회는 바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바흐는 1723년부터 1750년 숨을 거두기까지 라이프치히에서 살았는데 이 기간 내내 성 토마스 교회에서 지휘자와 합창단 단장으로 일했다. 그러면서 바흐는 '마태 수난곡'을 포함해 무려 265곡에 달하는 음악을 남겼다. 때문에 교회 곳곳에 바흐 흔적이 있는 데 교회 앞 광장에는 바흐의 동상이, 교회 2층에는 바흐가 사용했던 오르간이, 그리고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바흐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교회 내에는 바흐의 무덤도 있어 여전히 많은 음악애호가들이 헌화하며 바흐를 기리고 있다. 바흐 박물관(Bach Museum) 토마스 교회 근처에는 바흐 박물관도 있다. 바흐의 친구이자 귀족이었던 보제의 집을 개조해 만든 이 박물관은 바흐의 자필악보는 물론 대대로 음악을 이어 온 바흐 가문의 방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바흐의 음악은 물론, 악기별로 구분해 소리를 따로 들을 수 있는 시청각 자료실도 흥미롭다. 라이프치히 전투 기념비(Völkerschlachtdenkmal)
![]() 돌을 91m 높이로 쌓아 만든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념비다. 마치 중미의 아즈텍 신전을 보는 듯 한데 분위기도 엄숙하다.
독일이 이런 이례적인 기념비를 건립한 것은 라이프치히 전투가 그만큼 의미가 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웃 나라 프랑스에 시달리던 독일은 특히 나폴레옹 시절 프랑스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한풀이를 한꺼번에 한 것이 라이프치히 전투다. 러시아로 향하던 나폴레옹군을 맞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연합군이 국가의 존망을 걸고 라이프치히에서 맞붙었다. 1813년 10월 16일에 시작된 이 전투에서 불과 3일 만에 양측 합해 무려 10만 명이 전사했다. 전쟁사에서 전무후무한 참사였다. 이 결과 나폴레옹과 프랑스는 몰락했고, 반면 게르만의 자존심을 회복한 독일은 강대국의 길로 들어섰다. 독일이 가장 자랑하고 싶은 역사인 이 전투는 1913년 100주년이 되던 해에 건립된 라이프치히 전투 기념비로 영원히 남게 됐다. |
• 드레스덴(Dresden)
드레스덴은 이론의 여지없이 독일에서 가장 우아한 도시였다. 수많은 독일의 공국 중에서 가장 강력했던 작센 공국 시절, 이탈리아의 장인들이 도시를 건축한데다 수많은 문인, 철학자, 예술가들이 활약하면서 드레스덴은 ‘엘베강의 피렌체’로 불리며 문화예술을 꽃피웠다.
하지만 동시에 드레스덴은 독일에서 가장 비극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은 차마 이 아름다운 도시에 폭격을 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독일인들이 살기 위해 드레스덴에 몰려들었다.
마침내 1945년 2월 13일. 갑자기 연합군의 폭격기가 하늘을 뒤 덮었다. 그리고 사상 유례 없는 폭격이 가해졌다. 단 하루 만에 도시의 80%가 잿더미로 변했다. 얼마가 죽었는지는 알 수 조자 없다. 단지 수십만 명이라고 추정할 뿐….
이걸로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얼마 후 독일은 항복했다. 드레스덴을 제물로 2차 대전이 마감된 것이다.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독일은 드레스덴을 재건했다. 2005년 성모 교회가 마지막으로 복원되었을 때 언론은 “마침내 독일의 재건이 끝났다”고 감격 넘친 보도를 했다. 드레스덴이 작센 공국 시절의 ‘엘베강의 피렌체’로 완벽히 부활한 것이다.
제6일 바스타이-드레스덴 | ||
잠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즐겨봅니다. 사실 독일은 매력적인 도시는 넘쳐나지만, 자연풍경이 뛰어난 나라는 아닙니다. 드레스덴 근교에 ‘독일의 장가계’라고 불리는 바스타이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독일에서 유일하게 기암봉우리들이 몰려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독일의 장가계’라는 별칭은 명백한 과장입니다. 결코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기암 사이로 난 돌다리 하나 만큼은 분명 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오후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는 드레스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바스타이(Bastei)
드레스덴 근교에는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가지고 있다는 ‘작센 스위스’가 있다. 스위스와 비슷한 경치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괴테도 이곳에 들러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고 했다고 한다.
특히 작센 스위스에는 독일의 다른 곳에선 전혀 볼 수 없는 기암봉우리가 밀집한 지역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바스타이 국립공원이다. 바스타이는 ‘성곽의 돌출된 보루’라는 뜻인데 수직으로 곧추 선 기암들이 독일인들에겐 그렇게 보였나 보다. 이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바스타이 다리 (Basteibrucke)다. 원래 상인들이 다니기 편하도록 나무다리를 놓았는데 1851년 지금과 같은 돌다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1853년 왕실의 전속사진사가 이 다리를 독일 최초의 풍경 사진으로 남겼다는 점만 보아도 바스타이 돌다리의 특별함을 짐작할 수 있다. • 드레스덴(Dresden) 츠빙거 궁전(Zwinger)
드레스덴의 보물 1호로 독일 최고의 바로크 양식 궁전으로 꼽힌다. 18세기 초 강건왕이라고 불렸던 아우구스투스 때 왕실의 연회장으로 만들었다.
궁전 내부의 화려함은 물론 십자형의 넓은 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웅장한 정원, 방대한 예술품 컬렉션까지 감탄을 계속 연발하게 한다. 젬퍼 오페라하우스(Semperoper) 독일에서 첫 손 꼽히는 명문 오페라 극장이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고트프리트 젬퍼가 1841년 완공했다. 유럽에서 유명한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주 무대이며, 슈트라우스의 ‘살로메’와 히틀러가 그리도 사랑했던 바그너의 ‘탄호이저’ 등 수많은 명작들이 이곳에서 초연됐다. 알테 마이스터 회화관(Gemäldegalerie Alte Meister) ![]() 츠빙거 궁전 내에 있는 박물관 겸 미술관이다. 루벤스, 라파엘로, 반다이크, 렘브란트 등 거장들의 회화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특히 유난히 많은 대형작품으로 유명하다. 성모교회(Frauenkirche) ![]() 성모 교회는 드레스덴의 랜드마크다. 드레스덴 시민들의 기부금으로만 재건될 정도로 드레스덴 시민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독일 드레스덴의 중심부인 노이마르크트 광장에 96m 높이의 돔형 첨탑으로 우뚝 솟아 있는 성모 교회는 바로크 건축물의 걸작 중 걸작으로 손꼽힌다. 겉에서 보아도 아름답지만 내부도 무척 화려하다. 18세기에 완공될 당시 바흐가 작센의 왕을 위해 직접 오르간 연주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교회 앞에는 마틴 루터의 동상이 세워져있으며, 교회 꼭대기에 있는 8m 높이의 십자가는 이곳에 폭격을 가한 영국이 화해의 의미로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군주의 행렬(Fürstenzug) 벽화 ![]() 드레스덴 레지던트 슐로스 슈탈호프의 외벽에는 무려 101m의 길이에 8m의 높이로 작센을 통치했던 왕들의 행렬을 그린 벽화가 있다. 처음 만들어진 1876년엔 순수 회화였으나 1907년 약 2만 5천 장의 마이센 도자기를 가져와 타일 모자이크 벽화로 재탄생 시켰다.
왕의 모습 아래에는 왕의 이름과 그가 통치한 기간이 기록되어 있고 당시에 사용되었던 문장들이 그려져 있으며, 과학자와 예술가, 이 벽화를 그린 빌헬름 발터도 있다. 그 참혹했던 드레스덴 폭격을 피한 유일한 유적으로도 유명하다. 군주의 행렬 벽화는 ‘드레스덴 여행의 꽃’이라 할 정도로 무척 아름답고, 장엄하다. 브륄의 테라스(Brühl's Terrace) ![]() 브륄의 테라스에 선 괴테는 “여기야말로 유럽의 발코니”라고 내내 감탄했던 곳이다.
원래는 도시를 방어하는 요새의 성벽이었는데 1740년경 브륄 백작이 성벽 위를 멋진 정원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브륄의 테라스라 불리게 되었다. 이곳에 서면 도심을 유유히 흐르는 엘베강과 아우구스투스 다리는 물론 젬퍼 오페라하우스 같은 구시가지의 오래된 건물들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드레스덴 야경 드레스덴은 독일 최고의 야경을 가진 도시로도 유명하다. 유럽 최고의 야경이라는 프라하를 능가한다는 여행자들도 꽤 있다. 최고의 야경 포인트는 역시 브륄의 테라스. 저녁식사 후 어둠이 내린 드레스덴의 구시가지를 다시 걸어 본다. | ||
제7일 바이마르-아이제나흐 | ||
독일의 진정한 원류를 만나는 날입니다. 역사적인 의미로 볼 때는 가장 중요한 하루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교과서를 통해 배운바 있는 ‘바이마르 헌법의 도시’ 바이마르와, 우리에겐 낯설지만 독일을 낳은 도시 아이제나흐가 오늘의 방문지입니다. | ||
안나 아말리아는 사실상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이끈 인물이다. 남편인 바이마르 공국의 대공이 요절하자 안나 아말리아는 섭정에 나섰다. 그는 세속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대신 1562년 독일 최초의 공공도서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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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일 크베들린부르크-고슬라르 |
오늘은 유럽 전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완벽하게 중세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는 2개의 작은 도시를 집중적으로 둘러봅니다. 이 2개의 도시들은 다행스럽게도 1, 2차 세계대전에서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고, 그 덕에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습니다. |
• 크베들린부르크(Quedlinburg)
크베들린부르크는 독일 역사상 최초의 수도로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고도다. 독일의 원조인 동프랑크의 초대왕 하인리히 1세(Heinrich I)가 919년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하인리히 1세가 만든 도성인 크베들린 성(Quedlinburg)도 여전히 언덕배기에 건재 한다.
독일의 전통 양식의 집들을 하프팀버라고 한다. 나무로 기둥과 틀을 세우고 그 사이를 점토나 벽돌로 채운 반목재 집을 말한다.
크베들린부르크에는 1300년대에 만들어진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가옥 슈텐더바우(Standerbau)를 비롯, 약 2천 채에 달하는 하프팀버 가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의 포화를 모두 피한 덕분에 크베들린부르크는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 및 르네상스 도시로 꼽힌다.
1994년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고슬라르(Goslar)
오늘의 숙소가 있는 곳은 ‘북방의 로마’ 고슬라르다.
고슬라르는 11세기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3세가 가장 사랑했던 도시다. 그는 로마 교황 2명을 파면한 최강의 군주였다. 그는 스스로를 ‘로마인의 왕’이라고 칭했다. 그래서 그의 도시도 ‘북방의 로마’라고 불렸다.
그렇다고 이탈리아의 진짜 로마처럼 크고 화려한 도시는 아니다. 오히려 고슬라르는 인구 5만 명의 작고 조용한 도시다.
이 도시 안에 15-6세기에 지어진 예쁜 하프팀버 건물들이 1,500여 채나 다닥다닥 몰려 있다.
고슬라르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독일 황제의 상징인 금독수리 분수가 있는 마르크트 광장이다.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제9일 브레멘-함부르크 |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우리의 여정은 좀 더 북부로 향합니다. 그림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로 유명한 브레멘을 거쳐 우리는 독일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
• 브레멘(Bremen)
브레멘은 일찌감치 한자동맹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도시다. 한자동맹(Hanseatic League) 은 13-17세기에 북해와 발트해 연안의 도시들이 상권 확장과 안전 보장을 목적으로 만든 연맹이다.
지금도 브레멘은 인근의 함부르크와 함께 독일에서 유이하게 ‘자유도시’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브레멘은 그림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로 훨씬 더 잘 알려져 있다.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
브레멘 시 구시가지에 있는 중심광장으로 이 일대가 모두 세계 문화유산이다.
르네상스 풍의 시청사와 도시의 수호성자인 롤란트 동상, 브레멘의 상징인 브레멘 음악대 동상, 웅장한 고딕양식의 교회인 성 페트리 대성당이 모두 이 주변에 몰려 있다.
브레멘 음악대 동상(Die Bremer Stadtmusikanten)
브레멘에는 시내 곳곳에 유난히 동상이 많다. 하지만 역시 최고의 인기는 시청사 옆의 브레멘 음악대 동상이다.
그림 형제가 지은 브레멘 음악대 동화의 줄거리는 당나귀, 개, 고양이, 수탉이 주인의 수탈을 못 이겨 농장을 가출해서 음악대가 되기 위해 브레멘으로 향해 간다는 이야기다.
동상은 이 동화 속의 당나귀, 개, 고양이, 수탉 네 종류의 동물이 차례로 위로 올라 서있는 모습이다. 이 중 당나귀의 입과 다리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이 있어 그 부분만 닳을 대로 닳아 있다.
롤란트 동상(Bremer Roland)
마르크트 광장에는 커다란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바로 롤란트(Roland)다. 중세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는 ‘롤랑의 노래’에 등장하는 그 영웅 롤란트다.
롤란트는 실존 인물이다. 프랑스 샤를마뉴대제의 기사로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한 '무적의 군인'이었다. 그래서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선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롤란트 동상을 많이 세워 놨다.
1404년에 세워진 브레멘의 롤란트 동상은 높이 5.5m로 롤란트 상 중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이다. 나폴레옹이 브레멘을 점령했을 당시, 이 롤란트 상이 탐이 나 뜯어가려 했으나 브레멘 시민들의 간곡한 설득으로 이곳에 남을 수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뵈트허 거리(Bottcherstraße)
뵈트허 거리는 마르크트 광장에서 베저 강(Weser River)으로 이어지는 100m 정도의 길이다.
특히 입구의 거대한 황금부조가 인상적인데 천사가 악마를 이기는 형상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들이 거리 양쪽에 웅장하게 서있는 이곳은 작은 박물관과 공예점,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한, 브레멘에서 가장 매력적인 이 거리에서 자유 시간을 보낸다.
제10일 뤼벡-함부르크 |
오전에는 함부르크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뤼벡으로 향합니다. 한 때 한자동맹의 중심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던 뤼벡에서 독특한 중세 시대의 건축을 감상한 다음 함부르크로 귀환합니다. |
뤼벡의 상징이다. 독일 2유로 동전에도 새겨져 있고, 앤디 워홀의 판화에도 등장한다.
홀슈텐 문은 1478년에 건립된, 도시를 드나들던 4개의 성문 중 하나다. 붉은 벽돌로 지은 원뿔모양의 쌍둥이 탑인데 그 육중한 모습이 보는 이들에게 위압감을 준다.
하지만 워낙 무겁다보니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지반이 침하해 살짝 기울어져 있다. 홀슈텐 문 내부는 현재 시립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홀슈텐 문을 지나면 여섯 개의 건물이 보이는데 바로 뤼벡의 부를 가져 온 뤼네부르크의 소금을 보관하던 소금 창고다.
시청사(Rathaus)
뤼벡의 부와 권위의 상징인 시청사는 장식이 독특하여 '돌로 만든 동화'라는 칭호를 듣는다. ㄱ자의 특이한 형태인데, 붉은 벽돌이 대부분인 다른 뤼벡의 건물들과 달리 건물 한 편은 하얀 벽, 다른 쪽은 검은 벽돌이라 이 점도 무척 인상적이다.
뤼벡 시청사는 1226년 당시엔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가 증개축을 거듭하면서 고딕, 르네상스 스타일이 추가되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 리스트로 올라 있는 건축물이다.
성모 마리아 교회(Marienkirche)
첨탑의 높이가 무려 125m, 천장 높이는 38.5m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딕 교회다.
신교 교회답게 교회 안은 장식도 별로 없고 수수하다. 그럼에도 이 성당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1942년 폭격으로 탑에서 떨어진 종과 교회 밖의 악마 동상이다.
일설에 의하면 교회 터를 닦을 때 악마가 와인가게를 짓는 거라 착각하여 도움을 주었단다. 하지만 건축이 끝나고 보니 교회가 되어 있어 분노한 악마는 이 건물을 부수려 했다. 그 때 한 노인이 나타나 와인가게를 따로 지어 줄 테니 부수지 말라 제안하여 악마는 아무 소란 없이 떠났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교회 앞에는 와인가게가 있다.
제11일 함부르크-귀국 |
함부르크는 대도시지만 여행자들에게 그리 큰 매력이 있는 곳은 아닙니다. 다만 도시 재생의 세계적인 모범 사례인 하펜시티만큼은 꼭 가 볼 가치가 있습니다. 오후에는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이동, 귀국길에 오르게 됩니다. • 함부르크(Hamburg) ![]() 함부르크(Hamburg)는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그리고 동시에 브레멘과 함께 유이한 자유도시다. 특정 주에 속하지 않은, 사실상 수도에 준하는 권한을 가진 도시라는 뜻이다. 독일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이니만큼 항구 특유의 시끌벅적함을 찾아보는 것이 함부르크 여행의 포인트다. 하펜시티(Hafencity)의 엘브필하모니 극장 ![]() ![]() 하펜시티(Hafencity)는 함부르크 항구의 옛 창고지대를 완전히 리모델링하여 만든 복합 문화상업지구다. 함부르크 항구는 11세기 말경에 만들어져 독일은 물론, 유럽에서 가장 큰 항구중 하나가 되었다. 항구로 들어서면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붉은 벽돌 건물들이 눈길을 끄는데 화물을 무관세로 보관하던 창고 건물이다. 하지만 유럽(EU) 전체가 자유경제지역으로 통합되면서 이 창고들은 쓰임새가 크게 쇠퇴하고 말았다. 이에 함부르크 시는 항구의 재개발에 들어갔고, 그렇게 해서 하펜시티가 탄생했다. 이 하펜시티 내에서도 요즘 소위 가장 핫한 곳이 엘브필하모니 극장(Elbphilharmonie)이다. 2017년 1월에 개장한 엘브필하모니 극장은 세계 최대의 콘서트홀로 런던 테이트모던과, 바젤 비트라디자인뮤지엄, 샤울라거 뮤지엄 등을 설계한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의 작품이다. 최대 크기와 최고 음향을 자랑하는 이 콘서트홀은 2017년7월 G20 정상회의 참석차 함부르크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다른 정상들과 함께 여기서 공연을 관람한 바 있다. 공연을 보지 않더라도 21세기 가장 주목받는 건축물인 엘브필하모니 극장을 방문하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는 8층 창고의 옥상부분과 그 위의 콘서트홀 사이 공간에 여행자들이 둘러볼 수 있는 '플라자'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곳에 가려면 튜브(Tube)라는 이름의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한다. 길이가 무려 82m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느낌이 매우 독특하다. 이렇게 플라자에 오르면 함부르크 항구와 도시 전망이 멋지게 펼쳐진다. |
제12일 귀국 |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경유지를 거쳐, 12일째 오후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