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진장 - 시칠리아에 대하여
작성자 :
테마세이투어
작성일 :
2019.09.30
조회수 :
1946
이 글은 변진장님의 여행 후기입니다.
변진장님은 2019년 9월 11일부터 2019년 9월 21일까지 11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시칠리아 여행을 다녀오셨습니다.
글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변진장님은 2019년 9월 11일부터 2019년 9월 21일까지 11일간 테마세이투어와 함께 시칠리아 여행을 다녀오셨습니다.
글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여행의 시작
가. 여행의 결정
집사람은 파리나 뉴욕같이 도회적이고 문화적인 곳을 즐기는 반면,
시골출신인 나는 고산과 오지를 힘들여 걷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가 함께 여행을 다녀온 지가 꽤 오래되었다.
여행 스타일이 다르긴 하지만 일년에 한번쯤은 함께 하고 싶었다.
마침 추석 연휴기간을 포함하여 10여일 정도 시간 여유도 생겼다.
집사람이 ‘대부’ 영화에 나오는 시칠리아를 가보고 싶다고 했고,
마침 테마세이에서 ‘추석 연휴 시칠리아 11일 특집여행’ 을 마련하고
있어 행선지도 순조롭게 결정되었다.
부부가 오랜만에 함께 가는데 뉴욕이면 어떻고 히말라야면 어쩌랴!
내친 김에 체팔루를 배경으로 촬영했다는 ‘시네마 천국’ 도 다시 찾아
보며 여행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황혼의 나이에 함께 할 수 있는게 황혼이혼이 아니라 황혼여행이라니
고마운 일 아닌가!
여행내내 함께 한 하루하루가 많이 고맙고 즐거웠다.
서로 의지하는 마음도 커지고 생각하는 뜻이 애틋해지지 않았나 싶다.
나. 짐꾸리기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항상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꾸린다.
짐은 최대한 가볍게 하려고 노력한다.
가져간 짐을 보람있게 사용하였을 때는 만족감을 느끼지만,
사용하지도 않고 다시 가지고 올 때는 욕심냈던 걸 후회한다.
거꾸로 꼭 필요한 것을 빠뜨려 여행기간 내내 아쉬운 적도 있었다.
짐을 싸다보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 있지만,
그 꼭 필요하다는 것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행의 고수는 싸놓은 짐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많은 선현들이 지혜로운 삶의 방법으로 무소유(無所有)를 말한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것일게다.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깊이 새겨볼 말이다.
“스스로 선택하는 ‘청빈(淸貧: 맑은 가난)”, 오르고 싶어도 쉽지 않은
경지이다.
여행을 위한 짐을 꾸릴 때마다 해보는 생각이다.
다. 여행사 선택
혼자하든, 마음맞는 몇사람이 같이 하든 개별여행을 선호한다.
그렇지만, 개별적인 여행은 너무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자료수집이나 예약이 많이 수월해졌다고는
하나, 그런 환경에 익숙치 못한 세대이거나 바쁜 와중에 며칠 시간을
내야 하는 경우 어쩔 수 없이 페키지 여행을 택할 수 밖에 없다.
그럴 때 그 귀중한 시간을 가장 충실하게 도와줄 수 있는 여행사를
고르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허황되고 과장된 선전이 판치고 있는 요즈음에는 더욱 그러하다.
결국 한번 이용했을 때 좋은 인상을 주었던 곳, 믿을 만한 지인들이
추천하는 곳을 택하게 된다.
여행사들도 한번 오신 손님들을 평생 손님이라고 여기고 정성을
다하는 것이 많은 돈을 들이는 일회성 광고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새겨야 할 것이다.
수년전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평소
소식지를 통해 게제된 글들을 읽으며 관심을 가져 왔던 터라 주저없이
테마세이를 다시 찾게 되었다.
2. 시칠리아 개관
가. 개괄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 고 했단다.
그러나 그 원문은 “시칠리아 없는 이탈리아는 우리들 마음에 아무런
심상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시칠리아야말로 모든 것을 푸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라고 한다.
시칠리아의 지리나 역사, 문화 등에 관하여는 자료가 넘쳐나고 이미
이곳을 다녀오신 분들의 훌륭한 여행기(박길란-시칠리아와 아말피)
도 있어 나의 견문과 글솜씨로는 도저히 넘지 못할 경지이다.
나는 다만 나의 일정을 간단히 소개하고 느낀 점만을 적어보려 한다.
<이탈리아 지도>
나. 시칠리아의 위치와 역사
비행기 속에서 시칠리아의 지도를 보았다.
세모꼴로 생긴 것이 소가죽 펼쳐놓은 것 같기도 하고 트라이앵글 악기
같기도 하다.
시칠리아에서는 다리가 셋이고 가운데 메두사 얼굴이 박힌
트리나크리아(Trinacria)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트리나크리아의 모습>
시칠리아는 그리스와 로마, 아프리카로 들러 쌓여 있다.
지중해 한가운데 누구나 탐낼 위치에 방패막이 하나 없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시칠리아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문화를 가진 원주민
시쿠리족이란다.
그후 B.C. 8세기경에는 이웃의 그리스인이 시라쿠사로 이주해 왔고,
이어 페니키아인이 이 땅에 정착하였다.
B.C. 3세기경에는 이 땅에 눈독을 들인 로마가 시라쿠사인들과 연합한
카르타고와 포에니 전쟁을 일으켰고, 이 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한 이후
로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9세기경에는 튀니스의 아랍인들이 시칠리아를 점령하였고, 11세기에는
노르만족이 이곳에 시칠리아 왕국을 세워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후 점령이 아닌 혼인관계로 독일과 프랑스가 이곳을 지배하였고,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연합군이 점령하였다가 이탈리아에 합병되어
이탈리아의 자치주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원주민 시쿠리족이 살던 시칠리아에 그리스, 페니키아,
로마, 반달, 동고트, 비잔틴, 이슬람, 노르만,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그야말로 당시 힘있는 유럽의 모든 세력들이 한차례씩 정복하고 지배
했었던 것이다.
제주도의 14배라니 땅이 좁은 것도 아니고 척박한 땅도 아니다.
지정학적 위치도 너무 좋다.
그럼에도 당대의 힘있는 강국들이 돌아가면서 시칠리아를 침략하였고
시칠리아는 계속해서 오랫동안 그들의 수탈을 받았던 것은 무엇 때문
일까?
오로지 힘이 없었던 탓이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진 나라라도 힘이 없으면 열강의 먹이가 되고,
힘이 있으면 자신이 힘없는 나라를 지배하는 열강이 되는 것이다.
다시한번 우리 조국의 지난날과 오늘 그리고 앞날을 생각하게 된다.
다. 시칠리아의 마피아(Sicilian Mafia)
시칠리아가 열강들의 무자비한 수탈 속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생존방법을 찾기 위해서 몸부림친 결과로 생긴 것이 마피아란다.
외세의 압제 아래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시칠리아인들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했고 정부보다 마피아를 더 믿고 의지하는
토양에서 마피아가 탄생한 것이다.
근래 들어 마피아가 영향력을 확대하여 정계와 유착하고, 합법적인
지위에서 각종 행정과 이권사업에 참여하기도 하고, 미국이나 캐나다
까지 그 조직이 확대되어 세계적으로 문제가 심각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정부가 대대적인 단속과 수사로 마피아를
타도하기 시작했다.
시칠리아가 마피아로 대표되는 범죄의 나라에서 온전히 벗어난 것은
1990년대로, 당시 팔레르모의 조반니 팔코네(Giovanni Falcone)검사와
파올로 보르셀리노(Paolo Borsellino)판사가 마피아에 맞서다가
살해당한 사건이 있은 후라고 한다.
두사람이 주축이 된 ‘대재판’ 을 통해 마피아 소탕작전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마피아에 희생되면서 온 국민의 마음을 끌어내어
마피아의 나라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된 역사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팔코네-보르셀리노의 사진>
두 사람은 팔레르모 국제공항에 봉헌되었고 위 공항은
팔코네-보르셀리노(Falcone-Borsellino)국제공항으로 불리며
그 이름이 시칠리아인의 입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게 되었다.
3. 여행일정
가. 제1일(2019.9.11. 수)
인천을 떠난 지 15시간 30분 만에 경유지인 로마를 거쳐
팔레르모에 도착했다.
팔레르모 공항에서 현지 가이드 심선생을 만났고, 그는 여행 내내
해박한 잡학과 사람을 홀리는 입담으로 우리를 위해 수고해 주었다.
우리 일행은 여섯쌍의 부부와 혼자 오신 남자 한분으로 13명이었다.
인솔자인 테마세이의 직원 최유라씨는 많지 않은 나이와 경험에도
불구하고 온힘을 다해 맡은 일을 충실히 하려고 애써 주었다.
일행 모두가 건강하고 지성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어 농담같은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도 옷깃을 여미고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사이는 개인정보 보호 라는 명목으로 10여일을 함께 다니면서도
서로 이름조차 모른 채 지내기 십상이다.
옛날같이 억지로 개인소개를 시키고 친목을 강요하던 행태도
싫었지만, 지금의 풍속은 너무 개인주의적인 것이 아닌가 싶어
약간 아쉽기도 하다.
처음에 만났을 때 희망자에 한해서 간단한 자기 소개의 기회를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 제2일(2019.9.12. 목)
실질적으로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우리의 여행 경로는 팔레르모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방식이라,
오늘은 체팔루를 구경하고 다시 팔레르모로 돌아오게 된다.
체팔루는 팔레르모 동쪽에 있는 작은 항구도시로 지중해의 푸른
물빛과 무리지어 있는 집들의 붉은 지붕이 대조를 이루어 무척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이는 마을이다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나는 두오모 성당(Normannen Dom)을
둘러본 후 기념품점과 카페가 늘어선 좁은 골목길을 거닐고 바닷가를
산책하며 아이스크림이랑 맥주도 사먹고 낭만을 즐겼다.
주세페 감독이 ’시네마 천국‘의 명장면을 찍었다는 방파제에는 많은
사람들이 입고 벗고, 먹고 마시고, 떠들고 사색하며 나름대로 자기의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체팔루의 전경>
마을 한가운데에는 로마시대의 빨래터가 보존되어 있었고 오늘도
맑은 물은 흐르건만 여기에 모여 온갖 소문을 퍼뜨리고 깔깔대며
뒷담화를 했을 법한 여인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아쉬어 하는 이는 나뿐인가!
다. 제3일(2019.9.13. 금)
시칠리아의 주도이자 제1의 도시인 팔레르모에서 하루를 보내는 날이다.
괴테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했을 만큼
팔레르모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들이 많이 있다.
팔레르모 구시가지 한가운데 직각으로 교차하는 사거리인 콰트로 칸티
(사각형이라는 의미)에서 사방으로 뻗은 길에는 오래된 건축물과 조각
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벌거벗은 대리석 조각 때문에 ‘부끄러움의 광장’ 이라고 불린다는
아름다운 프레토리아 광장, 노르만 왕조의 궁전으로 건축되었으나
아랍인의 성채로도 사용된 노르만 왕궁, 팔레르모를 대표하는 두 개의
교회(마르토라나 교회와 산 카탈도 교회)가 있는 벨리니 광장을
둘러보았고, 노천에서 천막시장 형태로 열리는 재래시장에서 그들의
삶의 단편을 들여다 보기도 하였다.
저녁에는 마시모 극장에서 공연하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 를 보러 갔으나, 극장 안이 너무 무더워서 1막이
끝나자마자 뛰쳐 나와 시원한 와인을 한잔 마시고 잠이 들었다.
라. 제4일(2019. 9.14. 토)
팔레르모를 출발하여 몬레알레를 보고 에리체까지 가게 된다.
팔레르모를 떠나기 전 마지막 코스로 수천 구의 시체를 미이라 형태로
전시해 놓아 으시시한 기운이 느껴지는 카타콤베를 둘러 보았다.
마음 약한 여성들은 현명하게도 버스에 남아 소름을 피할 수 있었다.
몬레알레로 이동하여 노르만 시칠리아 시대에 축조된 황금색 돔과
모자이크가 유명한 몬레알레 대성당을 구경했다.
마침 그곳에서 결혼식이 있어 행복해 하는 신랑신부의 모습도 보았다.
카타콤베의 미이라를 보고 온 직후라서 생노병사에 울고 웃는 사람의
한 세상이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종착지는 예쁜 에리체이다
중세시대에 지어진 성벽도시로 크고 작은 길을 모조리 돌로 포장한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어 굉장히 아름다운 도시이다.
신화에 얽힌 도시의 이야기도 그렇고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그곳에서
파는 기념품이나 먹거리나 모두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곳이다.
마침 이곳에서 기아자동차가 주최하는 자동차 경주가 열리고 있었고,
사방이 훤히 트인 산정상이 있어 깨끗한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었다.
마. 제5일(2019. 9.15 일)
에리체를 출발하여 마르살라, 세리눈테를 거쳐 아그리젠토까지 간다.
마르살라는 시칠리아에서 제일 질좋은 소금이 생산되는 염전마을이고,
와인산지로도 유명하다.
로칼 가이드의 지루한 설명이 계속되는 동안, 수업 빼먹는 기분으로
하얀 소금더미와 수확이 끝난 포도밭을 바라보며 카페에서 맥주를
즐겼다.
일행중 한분이 학구열이 높아 계속 질문을 하였고,
로칼 가이드는 더욱 신이 나서 오래 시간을 끈다.
세리눈테에서는 비교적 잘 보존된 아크로폴리스를 둘러 보았다.
신전 기둥이 그대로 남아 있기는 하나 누구의 신전인지는 모른단다.
다만, 우리나라 고대건축에 쓰이던 배흘림 기법이 이 신전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누구의 원천기술일까?
숙소 근방에 있는 스칼라 데이 트루키(Scala Dei Turchi)는 아름다운
석회암 해안으로 그 특이한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을 만 했다.
마침 추석 보름달이 휘영청 떠있어 넋을 잃고 오랫동안 쳐다 보았다.
바. 제6일(2019. 9.16 월)
오늘은 아그리젠토에서 고대 그리스 유적지를 돌아 보고
피아차 아르메리나를 들려 칼타치로네까지 가게 된다.
그리스의 서정시인 핀다로스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라고
칭했을 만큼 그리스 고대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아그리젠토는
신들의 도시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34개의 외부기둥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
필적한다는 콘코르디아 신전, 제우스 신전, 헤라클레스 신전,
디오스쿠리 신전, 헤라 신전 등 신전의 계곡에는 그리스 유적이 가장
완벽하게 많이 남아 있어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고대문명의 유적지를 볼 때마다 “저 아름다운 것들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를 생각해 본다. 누구를 찬양하고 누구에게 감사할 것인가?
흔히들 어느 황제가 건축했다거나 어느 교황님이 제작했다고 한다.
과연 그들은 그것들을 만드는데 돌멩이 하나 올려 본 적이 있을까?
그 거대한 작품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노예와 농민과 노동자가 피를
흘리고 땀을 흘리고 채찍을 맞았을까? 재산은 얼마나 강탈 당했을까?
아버지가 그곳에서 돌에 깔려 죽고, 아들이 채찍질당해서 지어진
황금빛 신전, 굶주려 죽어 가면서 빼앗긴 재물로 제작된 아름다운
조각들을 올려다 보며 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화려한 모자이크 조각마다에 스며들어 있을 그들의 눈물과 거대한
돌덩어리에 물들어 있을 그들의 피와 땀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동은 죄가 아니다.
다만 그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희생을 새겨보며 잠간이라도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피아차 아르메리나에서는 로마시대 대저택인 ’빌라 로마나 델 카살레‘
가 볼 만 했고, 바닥을 장식한 모자이크 특히 비키니차림의 여성
모자이크는 요사이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섬세하였다.
사. 제7일 (2019.9.17. 화)
오늘은 바닷가를 떠나 내륙지방에 있는 칼타치로네와 판탈리카를 거쳐
시라쿠사에 머무는 날이다.
칼타치로네는 온 도시가 그야말로 도자기 즉 세라믹의 도시이다.
온통 세라믹으로 하나하나를 장식한 142개의 계단이 유명하다.
예쁜 세라믹 작품에 취해 20분의 체류시간은 너무 아쉬웠고,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다음에 들린 판탈리카는 벌집처럼 구멍이 뚫린 바위굴이 밀집해 있는
계곡으로 고대로부터 시체들을 매장한 일종의 무덤들의 집단이다.
길이 험하고 버스가 요동치는 바람에 심하게 멀미하는 일행도
있었으니 볼거리에 비해 오고가는 수고가 너무 컸던 것 같다.
오후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 항구도시이자 대학도시로 유명했던
시라쿠사에 도착했다.
BC 8세기경 풍요로운 땅을 찾아 헤매던 그리스인들이 해안에 세운
도시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천재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를 깨닫고 유레카(“알아냈다, 이것이다” 라는 뜻)를 외친 곳이다.
<아르키메데스 광장>
구시가지에는 두오모 성당이 있고 근처에 아레투사의 샘이 있다.
현대적인 도시의 면모도 갖추고 있어 한국에서는 값비싼 이탈리아
브랜드의 옷들을 좋은 조건으로 살 수 있다며 들뜬 이들도 있었다.
결국 다음날의 노토 일정도 포기하고 좋은 물건을 찾아 헤맨 집사람
덕분에 나도 바지 한벌과 노타이 두 개를 얻어 입었다.
기분좋은 하루이다.
아. 제8일(2019.9.18. 수)
시라쿠사의 옆 도시 노토를 구경하고 다시 시라쿠사로 돌아 온다.
노토는 1693년의 대지진으로 기존의 도시가 거의 완전히 파괴되고
그 대안으로 근처에 새로이 건설한 도시라고 한다.
<눈물의 성모성당 모습>
눈물의 성모성당, 아름다운 발코니 장식을 가진
팔라초 니콜라치 빌라도라타, 꽃으로 장식하는 내리막길 등
아름다운 건축물과 예술품이 많았다.
소개서에 이곳의 아이스크림이 세계 최고라고 하여 사먹어 보았으나
역시 그냥 아이스크림이었다. 또 속았으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시라쿠사 외곽에 그리스 시대 유적들을 모아 공원으로
조성한 고고학공원을 들려 구경했다.
천국의 채석장, 디오니시오의 귀, 로마의 원형극장 등이 볼 만 했다.
저녁에는 비록 세미정장이나마 갖춘 차림으로 미쉘린 식당 ‘돈 카밀로’
에서 식사를 했다.
일행중 이회장이라는 분이 통크게 값비싼 와인을 사셨다.
와인 소믈리에를 준비 중이라는 가이드도 깜짝 놀랄 정도의
고급와인이어서 모두들 감격해 했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어제는 일행중 생일을 맞으신 김여사께서 생일턱을 내셨는데...
이번 여행중 조식은 모두 호텔식, 중식과 석식은 모두 현지식이었다.
시칠리아 요리는 복잡한 역사만큼이나 여러나라로부터 다양한 영향을
받아 독자적으로 특색있게 발전해 왔다고 한다.
지금은 거꾸로 시칠리아 요리가 이탈리아 요리의 정수이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고 서양에서는 시칠리아를 "하느님의 부엌"
이라고 까지 부른다.
화산 지형 덕분에 땅이 비옥하고 농사가 매우 잘 되어 시칠리아의
농산물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편이고.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웬만한
식재료는 모두 여기서 생산된단다.
시칠리아인이 한해 평균 44kg을 먹는다는 파스타가 시작된 곳이 이곳
이며 싸고, 배부르고, 맛까지 좋아 가장 서민적인 음식이 되었다 한다.
대표적인 요리로 주먹밥에 라구소스, 모짜렐라치즈에 콩과 밥을 넣고
빵가루를 입혀 튀긴 아란치니, 튜브 모양의 빵 속에 크림과 당류,
리코타치즈를 넣어 만드는 카놀리, 디저트 케이크 카사타가 유명하다.
자. 제9일(2019.9.19. 목)
시라쿠사를 출발하여 에트나 화산을 보고 타오르미나에 여장을 푼다.
에트나 화산(3,323m)은 지금도 활동하는 유럽에서 가장 큰 화산이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내뱉은 검은 흙과 화산석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날씨 때문에 산에 올라가지도 못하기 일수라는데, 우리 팀은 누군가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분이 있었는지 괜찮은 기상상태에서 구경을 했다.
지난달 백두산에 세 번을 오르고도 구경하지 못한 천지가 새삼
그리웠고,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이번 여행중 우리 부부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도시는 타오르미나이었다.
온 도시가 흰색 톤을 가지고 있고, 지중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다.
예쁜 별장과 카페들이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었고,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온화한 기후 때문에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가장 인기있는
겨울 휴양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시내 동쪽편에 있는 그리스 야외극장은 B.C. 3세기에 건립되었고,
로마시대에는 원형경기장으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매년 그리스의
고전 연극이 공연된다고 한다.
앞으로는 에트나 화산이 보이고, 뒤로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바다가
감싸고 있는 그리스 야외극장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대단한 유적이
아닐 수 없었다.
이곳에서 공연되는 음악회나 영화제를 언제 한번 볼 수 있으려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4월 9일 광장과 두오모 광장, 진한 커피향으로
여행객들을 유혹하는 카페와 세련된 기념품들을 아름답게 진열해 놓은
가게, 자유로움에 들뜬 여행객들과 시칠리아 과일과 과자에서 풍기는
달콤한 향기들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어지는 곳,
그곳의 이름은 움베르토 거리이었고 우리의 여행을 가장 풍족하게
해준 마지막 보고이었다.
차. 제10일 (2019.9.20. 금)
타오르미나에서 오전을 자유롭게 보내고, 오후에 항공편으로
카타니아에서 로마를 거쳐 인천으로 귀국하는 날이다.
준비해 간 유로화를 탈탈 털어 지인들에게 줄 자잘한 기념품들을 사고
맛있는 화이트와인을 곁들여 입에 맞는 점심으로 여행기간 동안
친해진 분들과 아쉬움을 달랬다.
카. 제11일 (2019.9.11. 토)
오랜 비행 끝에 인천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되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온통 잠이다. 너도 나도 잠이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나의 보금자리로 돌아온다는 귀소본능에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지기 때문인가 보다.
각자의 짐을 찾기 바쁘게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에 또 봅시다’ 라는 덧없는 말을 던지면서...
그래 다음에는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볼까요?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잘 알지도 못한 채로 똑같이
자고 먹으며 지냈던 며칠이 지나고 여기서부터는 다시 각자의 세계로
발을 딛는다.
누구는 기사가 짐을 끌어주며 인도하는 자가용에, 우리는 공항택시를
타고 익숙한 서울 공기를 들이마시며 사무실 걱정, 애들 걱정 같은
아직 닥치지도 않은 내일의 걱정을 끌어다 미리 예습해 본다.
4. 여행을 마치며
이탈리아 본토에서 비행기를 타면 팔레르모나 카타니아로, 기차를
타면 기차를 배에 싣고 메시나해협을 건너 메시나로 도착한다고 한다.
이탈리아 본토와는 겨우 3km 떨어져 있어 메시나 해협 대교의 건설을
추진 중이지만, 막대한 공사비용과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사업 재개와
중단을 계속 반복하고 있단다.
왜 그들은 편리함을 거부하는 것일까?
이탈리아에 편입되어 자치주로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이탈리아 중앙정
부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자기들만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서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하려는 분리주의자가 많이 있다고 한다.
인간은 모이는 동물인가, 아니면 흩어지는 동물인가?
유럽인들 사이에는 ”유럽에서 남자가 가장 비참하게 사는 방법은 독일
여자와 결혼해서 영국인 요리사를 두고 이탈리아에서 사는 것” 이라는
유머가 있다고 한다.
독일여자의 깐깐함과 영국인의 맛없는 요리솜씨를 말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탈리아가 정치와 행정 분야에서 혼란과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음을 빗대어 하는 소리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시칠리아가 열강들의 침략을 받아 무자비한 수탈에
시달렸지만, 지금의 시칠리아섬은 지난 세월 역사적 아픔을 딛고
어마어마한 유물과 사적을 간직한 보물섬으로 재탄생했다.
침략자들이 시칠리아를 침탈하고 주민들을 괴롭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찬란한 문화를 시칠리아섬 전역에 모자이크처럼
점점이 박아 놓기도 하였다.
시칠리아사람들을 보면 다소 단순 투박하고 거친 듯하지만 내면에
특유의 낭만과 정열을 간직하고 있다.
작은 마을의 골목에서 그들의 호쾌한 웃음소리와 노래 소리를 들으면
마치 옛친구를 만난 듯 정겹게 느껴진다.
사람들을 부르는 자연적 조건, 역사적 배경, 풍부한 먹거리, 빛나는 유
적 유물과 사람들의 따뜻한 감성.
시칠리아는 누구나 죽기 전에 한번은 꼭 가봐야 할 완벽한 여행지임이
틀림없다.
길지 않은 10여일의 여행이었지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먹고 마시
고 웃으며 지낸 즐거운 여행이었다.
함께 한 동반자들과 가이드, 인솔자에게 모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여행기간 내내 불편함을 참으며 즐겁게 지내 주었고,
와인만 보면 마구 마시려 드는 나를 붙잡아 준 집사람에게 감사하다.
벌써부터 그녀와의 다음 여행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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