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동남아를 여행하다보면 유난히 목 잘린 불상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박물관이나 운주사 같은 고찰을 가보면 머리 부분이 없는 불상이 많다. 그런데 우리와 동남아의 이유가 전혀 다르다. 우리의 경우는 대부분 비바람에 불상이 넘어지면서 구조상 가장 취약한 목 부분이 부러져 나간 것들이 많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생긴 자연스런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들어 억불숭유 정책으로 인해 일부 고의적인 훼손이 없진 않았지만 당시 왕실에서조차 사찰에서 자주 백일기도 등을 한 사례에서 보듯 불교는 이미 전 백성의 토착신앙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례는 흔하지 않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동남아는 대부분 인위적인 경우가 많다. 누가 일부러 목을 쳐냈다는 뜻이다. 중세 무렵 동남아의 역사는 태국의 아유타야 왕조, 미얀마 왕조, 캄보디아의 앙코르 왕조 등 세 나라가 지역의 패권을 놓고 수백 년 간 치열한 다툼을 벌인 전쟁의 역사다. 바로 이 시기에 불상이 가장 많이 만들어졌고, 불상파괴도 가장 많이 이루어졌다. 유럽의 중세가 기독교가 가장 강성한 시절이었듯 동남아의 중세는 불교가 가장 융성한 시기였다. 국가의 부흥과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많은 사원과 불상 건립이 이루어진 것은 세 나라간의 팽팽한 세력 다툼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전쟁은 어느 한쪽은 이기고, 어느 한쪽은 지는 결과를 필히 만들어낸다. 전쟁에 이긴 쪽은 전쟁에서 진 쪽이 더 이상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갖가지 조치를 취하는데 그 중 하나가 동남아에선 불상의 목을 치는 것이었다. 불상의 목을 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신성을 꺾어 그 나라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겠다는 것이고, 그 나라의 기를 근본부터 없애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유럽과 달리 동남아에선 패전국에 대해 도시 전체를 파괴하기 보단 불상 훼손이 상징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행동이었다. 아유타야가 앙코르 제국의 불상을, 미얀마가 아유타야 불상의 목을 무엇보다 먼저 쳤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건 바로 일제시대 때 일본이 우리의 기를 말살하기 위해 쇠말뚝을 곳곳에 박아 넣은 것과 같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